티스토리 뷰
인간극장 회 예고 다시보기(동영상)
우리 동네 파바로티
방송일시 : 2019년 4월 1일(월) ~ 4월 5일(금)
채 널 : KBS 1TV 07:50 ~ 08:25
프로듀서 : 윤한용
제 작 : 타임프로덕션(02-761-6921)
연출, 촬영 : 강효헌 / 글․구성 : 홍현영
보도자료 문의 : 김가림 취재작가
유학파 출신의 성악가, 고희전(41)씨.
5년간의 독일 생활을 마치고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안성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의 집 옆 고추밭에 집이 딸린 카페 겸 공연장을 짓고
‘우리 동네 파바로티’가 되어 정착한 지도 7년째다.
유럽에서는 오페라 가수로도 활동했던 희전씨지만
한국에서는 아이 셋 딸린 가장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생계형 성악가!
매일 새벽 동네 방앗간에 출근해 떡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구순 할아버지까지 연령대 다양한 마을 합창단을 꾸려 지휘도 맡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식까지, 불러만 주면 무대를 가리지 않는 희전씨.
유학까지 다녀온 성악가가 어쩌다가 시골 동네 ‘파바로티’가 된 걸까?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음대에 들어가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된 희전씨.
유학에 뜻을 품고 아내 조유진(42)씨와 백일 된 첫째 딸을 데리고 독일로 향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 붙었지만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을 받아 성악가의 길을 걸어온 남들에 비해,
실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늦깎이 성악가.
더군다나 유학생 신분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도 빠듯한 처지였지만,
마음을 다잡고 스위스 오페라 무대의 배역을 따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랜 타향살이에 지친 아내의 향수병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희전씨.
처음에는 작은 동네 무대를 돌며 창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음악을 펼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희전씨의 가장 든든한 언덕이 되어준 부모님.
농사를 지으며 20여 년을 면사무소 소사일을 해오신 아버지 고관원(73)씨와
오랫동안 라면 공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8년 전부터는 요양보호사로
매일 병원에 출퇴근하는 어머니 이규복(65)씨다.
빠듯한 시골 형편에 퇴직금과 월급을 보태 단 하루도 늦는 법 없이
꼬박 5년 동안 아들의 유학비 250만 원을 댔다.
한국에 돌아와 유명한 성악가나 돈 잘 버는 교수가 되지는 못 했지만
이제는 동네 성악가로써 또 다른 꿈을 펼치고 있는 희전씨.
직업과 연령에 상관없이 다 함께 오페라 공연을 즐기는 무대를 꿈꾼다.
그리고, 올해 첫 하우스 콘서트를 앞두고 논밭 둘러싸인 시골 동네에 레드카펫이 깔린다!
# 생계형 성악가,
우리 동네 파바로티!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향 안성으로 돌아온 성악가 고희전(41)씨.
콧대 높은 유럽 오페라 무대에 당당히 주연까지 거머쥔 실력이기에
당연히 금의환향인줄 알았건만, 현실은 냉혹했다.
불러주는 무대는 없고, 인맥은 빈약했다.
오로지 아이 셋의 아버지라는 생계의 책임감만 컸던 상황.
상심도 컸지만, 뚝심의 성악가 고희전씨,
고향에 돌아온지 7년 만에
아버지 고추밭에 자리를 잡고
작은 공연장이 딸린 카페를 짓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 새벽 6시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방앗간으로 출근해 시급 만 원짜리 떡 포장과 배달일을 한다.
방앗간 일이 끝나고 나면
70대의 막내 할매부터 구순의 할배까지
노래로 삶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동네 어르신들을 모아 합창단 지휘를 하고
유치원 교사 모임에서 초등학교 입학식까지,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생계형 성악가!
클래식 음악이 생소한 시골 동네에서
7살 유치원생부터 농사꾼 할머니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다 함께 오페라 공연을 즐기는 소통의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우리 동네 파바로티, 희전씨다.
# '세상에 하나뿐인 너의 목소리'
고희전씨의 음악인생은 시작부터 돈키호테 같았다.
기술을 배워 먹고 살라는 아버지의 엄명 때문에 공대에 진학했다가 자퇴하고
남들은 조기교육한다는 음악을 스물한살에 시작,
스물 다섯에 아내와 첫 째 딸을 데리고 유학길에 올랐다.
학벌도 실력도 부족했지만,
그 어렵다는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 한 번에 합격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도 했다.
하지만 늦게 시작한 실력은 금방 드러났고,
황소 울음소리 같은 성량을 가진 경쟁자들 사이에서
뒤처지던 늦깎이 성악가, 희전씨.
그러나 ‘세상에 하나뿐인 목소리’라고
희전씨를 응원하고 독려해준 은사님들 덕에 마음을 다잡고
스위스의 오페라 무대에서 배역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아이 둘을 키우며
레슨비조차 없이 오로지 부모님께 유학비를 손 벌리는
빠듯한 생활을 전전해야 했고,
오랜 타향살이에 지친 아내의 향수병으로
희전씨는 독일 생활을 접고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겨”
5년간의 독일 유학, 그리고 돌아온 후 고향에 자리잡기까지
그 뒷바라지는 오롯이 부모님의 몫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면사무소 관리직으로 일했던 아버지 고관원(73)씨와
라면 공장에서 일하다 은퇴하고
요양보호사로 재취업해 일하고 있는 어머니 이규복(65)씨.
4남매 연년생으로 키우고, 아들을 유학까지 보낸 부모님은
없는 형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월급과 퇴직금을 모아 꼬박 5년 동안 매달 250만 원씩,
하루도 늦는 날 없이 아들의 유학비를 댔다.
뼈 빠지게 돈 벌어 가르친 아들,
한국에 돌아와 교수라도 될 줄 알았는데
아침에는 떡 배달, 오후에는 동네 합창단 지휘를 하는
동네 성악가가 됐으니 부모님 속이 오죽하랴 싶지만,
정작 아들의 속은 오죽하랴,
책망대신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며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희전씨와 아버지.
어느 날 낚시터에 들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어릴 적 희전씨처럼 가수가 꿈이었다는 아버지
자식들에게 노래를 녹음해서 들려주던 때를 추억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다.
예나 지금이나 든든한 언덕이 되어준 부모님,
희전씨가 꿈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시골마을에 레드카펫 깔린 날!
5년간의 독일 유학, 그리고 돌아온 후 고향에 자리잡기까지
그 뒷바라지는 오롯이 부모님의 몫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면사무소 관리직으로 일했던 아버지 고관원(73)씨와
라면 공장에서 일하다 은퇴하고
요양보호사로 재취업해 일하고 있는 어머니 이규복(65)씨.
한때 파바로티같은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꿨던 희전씨.
고향마을에 돌아온 지금 그는 조금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유학 시절, 유럽의 작은 동네에서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인 변호사, 굴뚝 청소부, 버스 운전사가
함께 오페라 공연을 즐기고 ,
격의 없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고향 동네에 꼭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우리 동네 클래식 콘서트.
올봄에도 첫 번째 공연을 준비하는데...
희전씨의 꿈을 위해,
아내 유진씨와 부모님, 장모님까지 모두 소매를 걷어붙인다.
세 명의 부모님은 김밥을 싸고, 시골마을에선 보기힘든 치즈와 와인까지 준비한다.
드디어 희전씨의 카페공연장에 레드 카펫이 깔리는 날!
밭에서 감자 심던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도
호미를 던지고 공연장으로 모여드는데...
독일에서 활동하는 현역 테너부터
이태리에서 공부를 했다는 소프라노 가수를 초청해
합동 공연을 준비한 희전씨.
논밭에 둘러싸인 안성의 시골 마을에 낯선 오페라와 클래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
(출처 - 네이버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