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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86회 예고 다시보기(동영상)

 

 

7남매의 장남으로 산다는 건 방송인 이상벽

 ■ 실향민 7남매의 장남, 이상벽이 가족에게 선물한 제 2의 고향 
 이상벽은 한국전쟁 중 일어난 1.4후퇴 당시 4살의 나이로 어린 여동생과 헤어져 이
산가족이 되었다. 고향과 여동생을 보지 못하고 남한에 정착하게 된 지도 68년이 흘
렀다. 긴 세월 고향도 없이 지낸 가족들을 위해 이남에서 마음 붙일 고향집을 선물하
고 싶었던 이상벽. 그는 지난겨울 충청남도 홍성군에 가족들을 위한 집을 마련했다.
이제 이상벽의 가족들은 명절에 찾아갈 고향집이 생긴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홍성
집에서 이상벽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아쉽
게 탈락하며 여동생과의 재회는 불발됐지만 가족들은 새로 생긴 고향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갈 데도 없고 맨날 그런 쓸쓸한 명절을 보냈는데
  올해부터는 홍성 집을 마련하고부터는
  이 집을 고향 집이라고 가정을 하고 올해부터는 모여서 같이 지내자고 했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50년 동안 마이크를 잡고 살아온 사람 아니랄까봐 가족 모임에서도 MC를 자처하
는 이상벽. 송편을 빚는 동안, 그의 지휘 아래 네 명의 여동생들은 일사분란하게 움
직인다. 그러나 71세의 베테랑 MC도 94세 어머니에겐 여전히 아이일 뿐! 이상벽은
어머니에게 송편 빚는 법을 배워 여동생들 틈에서 서툰 솜씨로 송편을 빚어냈다. 그
런가 하면 이상벽은 직접 윷판을 그리고 나무를 깎아 윷을 만들기 시작한다. 어머니
와 여동생들과 함께 직접 만든 윷으로 윷놀이를 즐기며 미리 명절 분위기를 만끽했
다.
 또한 추석을 앞두고 이상벽과 여동생들은 여주에 있는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다. 이
상벽의 아버지는 18년 전, 담도암으로 7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큰 아들 이상벽
에게 아버지이자 형이 되어주던 아버지.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상벽은 1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장남으로
서 무너져 있을 수 없었던 이상벽은 어머니와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다시 일어
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며 집안의 가장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병상에 계실 때도
  ‘내가 떠나면 어떻게 살아갈 거냐.’물고 자문자답하듯이
  ‘큰 애가 있으니까 뭐.’(라고 하셨어요.)
  그게 어머니를 나한테 맡겨도 괜찮겠다는 믿음이겠죠.”
  - 이상벽 인터뷰 中 

 이북에서 내려와 쓸쓸할 가족들을 보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빈자리를 채
우며 살아가고 있는 7남매의 장남 이상벽. 유쾌한 가족들의 명절나기와 제 2의 고향
집을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한다.

 ■ 94세 어머니를 모시는 71세 아들 이상벽의 사모곡 
  6년 전, 이상벽은 큰 아들로서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심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한 어
머니를 위해 고향 황해도 바다와 맞닿아 있는 인천에 집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들의
동거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의 14층과 25
층에서 윗집, 아랫집 이웃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다
른 가족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한 이상벽의 배려다. 또한 94세의 나이에도 아
이스커피를 즐겨 마시는 어머니를 위해 집 앞 카페에 매달 10만 원을 맡겨 놓는 이상
벽. 어머니가 언제든 편하게 와서 친구들과 커피를 즐기시도록 한 그만의 특별한 효
도방식이다. 71세의 아들 이상벽은 94세의 어머니가 남은여생 마음 편하고 좋아하시
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나는 우리 엄마야말로 가장 든든한 언덕이에요.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든든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고향과 딸을 그리워하면서도 7남매를 모두 무사히 키워낸 이상벽의 어머니. 94세가
된 어머니를 위한 71세 아들 이상벽만의 독특한 효도 방법을 MBC 휴먼다큐 <사람
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성실이 밑천이다!’ 자수성가 MC 이상벽! 
 이상벽의 50년 방송 인생은 1968년, 세시봉 음악 감상실에서 우연한 기회에 마이크
를 잡게 된 후 시작되었다. 세시봉 음악 감상실에서 진행자로서 끼를 뽐내던 중 TV
제작부의 눈에 띈 이상벽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대학 3학년 시절 처음 마
이크를 잡고 진행을 한 후, 군대를 전역한 이상벽은 그 후로 마이크가 아닌 펜을 잡
고 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한 일간지의 연예기자로 10년 동안 활약하며 기자로
서도 명성을 높였다.

  “고향이 이북이니까
  정말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리랜서 MC라는 직업은 우리처럼 배경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좀 불안한 직업이잖아요.
  그러나 정규 신문 기자는 안정적인 분야라는 쪽에서 고민하다가
  기자 쪽으로 선택했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연예기자로 명성을 높인 이상벽. 하지만 그는 10년 만에 기자생활을 정리하고 다
시 방송에 복귀한다. 그리고 <주부가요열창>,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등 운명 같은 프로그램을 만나며 전설의 MC로 거듭나게 된다. 

 이상벽하면 장수 MC란 수식어가 떠오를 정도로 <주부가요열창>을 6년, <아침마당
>을 12년 동안 진행해왔다. 그가 시청자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비결을 묻자 <아침마
당>을 함께 진행했던 이금희, 정은아 아나운서는 입을 모아 성실함이라고 답했다.
늘 생방송 1~2시간 전에 도착해 수기로 대본을 고쳐 쓰는 등 성실히 방송에 임하던
이상벽. <아침마당>을 진행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돌연 그가 어지럼증을 호
소하며 쓰러지게 됐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2003년, 12년간 진행하던 아침마당
MC 자리에서 하차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 후 방송에 복귀한 이상벽은 이제 진행자
가 아닌 출연자의 자리에서 방송에 임하고 있지만 그의 성실함은 여전하다.

  “우리 애들한테 항상 얘기하는 게 성실이 밑천이다.
  우리가 친척 내외가 없는 이남에서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성실하게 사는 것이 밑천이다’라고 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실향민으로, 또 7남매의 장남으로 71년 세월을 오직 성실함만으로 쉼 없이 달려온
이상벽. 94세 어머니와 함께 그려가는 이상벽의 황혼의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
>에서 들어본다. ..

(출처 - 네이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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