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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94회 예고 다시보기(동영상)

 

 

나와 아빠 – 가수 조정민

 ▶ 소녀가장이 된 ‘음대여신’, 트로트를 만나다. 

  호소력 짙은 가창력과 빼어난 외모로 트로트계에 입지를 넓히고 있는 가수 조정민
(33세). 음대 출신이란 장점을 살려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트로트 가수’로 가요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어릴 적부터 가수를 꿈꿨던 조정민이지만, ‘트로트’를 택한
건 운명이었다.
  조정민이 음대 재학 중이던 2007년,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 충격으
로 고통스러워하던 아버지는 이듬해 2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평
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어머니와 어린 두 남동생까지 네 가족의 생계가 현실로 다가
왔다. 가수라는 꿈도 학교도 사치로 느껴졌던 조정민. 휴학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아노 레슨, 카페 피아노 연주, 설거지에 청소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때,
조정민에 다가온 것이 바로 ‘트로트’였다.
  대학 축제에서 조정민의 노래를 들었던 트로트 제작자가 때마침 조정민에게 연락
을 해왔다. 당시 가요계에 불던 ‘장윤정 신드롬’에 힘입어 집안을 일으키려 했던 조정
민. 하지만 가요계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2009년 데뷔곡 ‘점점점’을 발표, 전국 재래
시장을 돌며 노래를 홍보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고 6개월
만에 활동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가수의 길은 포기할 수 없었던 조정민.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마다 올리기 시작했다. 실낱같은 희
망을 담아 올렸던 영상은 기적처럼 방송 제작자의 눈에 띄었다. 2014년, 트로트 경
연 프로그램 ‘트로트 엑스’를 통해 화려하게 귀환한 조정민. 한 때,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운명이 돼버린 ‘트로트’로 그녀 인생에 반전이 시작됐다.


  스물두 살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됐어요.
  가정이 갑자기 기울어지면서 저는 가장이 되었어요.
  갑자기 책임감을 안게 되었는데 처음에 막 믿어지지 않고,
  가족들은 다 암울하고, 저한테 꿈이라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학교도 휴학하게 되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인생의 처절함을 그때 깨달았어요.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받다가 제가 생활비를 벌어서 써야만 하는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 뭔가 나 혼자 사는 힘든 인생을 나 혼자 사는 것 같다.
  그런 생각도 들고, 정말, 살기 싫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조정민 협성고등학교 강연 int 중- 


  저 영상 좀 찍어 달라고,
  그래서 제가 카메라를 집에 있는 안 좋은 거지만
  그걸로 찍어 달라고 해서 그때 한참 인터넷이 막 발달 되어있었고
  그때 유튜브는 사실 유명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나 혼자 뭔가 만족을 느끼기 위한 그런 거로 커버 곡을 만들어서...
  성시경 ‘두 사람’을 딱 제가 딱 연주하는 걸 보고 엠넷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그때 당시 ‘트로트 엑스’라는 프로그램을...
  -조정민 int 중- 


 ▶ 불러만 주세요! 어디든 달려가는 ‘열정 부자’ 남매의 연예계 정복기! 


  조정민의 가장 큰 버팀목은 매니저이자 친동생인 조현석(31세) 씨다. 2년 전, 소속
사 대표를 찾아가 누나의 매니저를 자청했다는 동생 현석 씨. 일정 관리부터, 무대
의상 쇼핑, 출연 프로그램 모니터링에 자칭 ‘무플 방지 위원회’까지 맡으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누나의 연예계 활동을 돕고 있다.
  한 땐, 가수를 꿈꾸는 누나가 철없이 느껴졌다는 동생 현석 씨. 그런 동생의 생각
을 바꾼 건 꿈을 향한 조정민의 끈기와 열정이었다. 매니저가 되어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가장 역할을 하는 누나를 도와 가족에게 보탬이 되기로 마음먹은 현석
씨. 이제 동생은 조정민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누나가 쉬면 자신이 더 불안하다
며 언제나 조정민을 채찍질하는 스파르타 매니저 현석 씨. 평생 삼 남매를 키우시느
라 고생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조정민 남매. 열정 한가
득 담긴 두 남매의 유쾌한 일상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최초 공개한다.

 

  지금 집이 되게 사실은 먹고 살 궁리해야 하는데 그럴 때 자기 꿈을,
  자기 꿈만 이렇게 향해서 나가는 게 되게 조금 약간 이기적으로 보였어요.
  가족들은 생각 하나도 안 하는 건가 약간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가수가 되는 게 말은 쉬운데 과정이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보통의 경우는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에는 되게 약간 부정적으로 바라봤었어요.

  누나도 되게 옆에서 지켜 주고 싶고,
  제가 같이 있으면서 재밌는 이야기도 같이 나누고, 더 힘을 준다고 해야되나,
  제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누나 일을 대표님께 누나 일을 제가 해도 되겠냐고,
  제가 부탁 드렸었거든요.
  -조정민 동생 조현석씨 int 중- 


 ▶ 한국 가수 조정민, 일본 ‘엔카’의 중심에서 재일조선인 위한 노래 부르다
 

  2018년 1월 오사카 쇼케이스로 일본 활동을 시작한 조정민. 노래 제목은 ‘아빠’, 첫
일본 데뷔곡임에도 제목이 한국어다. 고국을 떠난 딸이 아버지와 고향을 그리워하
는 내용이 담겨있다. 가장 먼저 노래에 반응한 이들은 오사카의 재일조선인들이었
다.
 재일조선인 2세 정조자(78세) 할머니는 조정민의 1호 팬이다. 조정민의 데뷔곡 ‘아
빠’를 들으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는 할머니. 정조자 씨의 아버지는 일제 강
점기 시절 경상북도 구미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한평생 조선 땅을 그리워하며 살았
던 재일조선인 1세다. 일본과 북한의 정치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가장 먼저 혐한
시위의 표적이 되는 재일조선인. 이들은 일본에서 선거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특별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으로 살고 있다. 일본 우익들의 탄압과 정치적 차별 속에서도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고 조선 학교에서 조선말을 배우며 살아간다. 정조자 할머
니 가족과 만남으로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 조정민.
 지난 10월, 조정민은 ‘엔카’의 성지이자 ‘혐한’의 중심이라고도 불리는 오사카 최대
축제 ‘도톤보리 리버 페스티벌’에서 당당하게 데뷔곡 ‘아빠’를 불렀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조정민. 이제는 팬과 가수를 넘어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
고 있는 조정민과 재일조선인 가족의 특별한 우정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담아본다.


  큰 이유는 없고 조선 사람으로 살아온 긍지?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 고향이 아닌 여기로 와서 고생을 하시는 것이.
  왜 내가 일본 사람이 되어야 하냐는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손자도 치마저고리 입어서 고등학교 가고 있습니다.
  일본 아이들이 조선 학교, 조선인, 자기 고향 가라고 하면서
  다 뭐 칼로 해서 치마저고리 자른 적이 많이 있습니다.
  -재일조선인 2세 정조자 할머니 int 중- 


  선조들이 살고 계신 고향 땅은 조선 반도잖아요.
  그때 1세 분들이 건너왔을 적에는 조선 반도였잖아요.
  한국도 북한도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건너 온 사람.
  건너온 1세 분들은 다 조선 사람이 한국 사람으로 온 것이 아니라
  조선 반도에서 건너 왔다가.
  조선 사람으로 사는 걸, 여권도 다 조선 그것이 원래 이유잖아요.
  -재일조선인 3세 조기미씨 int 중 -  ..

(출처 - 네이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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