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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98회 예고 다시보기(동영상)

 

 

이 시대 최고의 광대, 사물놀이 김덕수

 @ 거장은 멈추지 않는다! - 이 시대 최고의 광대, 김덕수 

 “이해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잖아요. 엄청난, 안타까울 정도의 아쉬움이
죠. 그 아름다운 시간을 아이들과 가족들과 함께 못했다는 것. 어쩔 수 없는 예인의
운명이죠.”
 - 김덕수 인터뷰 中 

  ‘사물노리안’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전 세계인에게 널리 퍼진 ‘사물놀이’가 올
해로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이 사물놀이의 선구자가 바로 이 시대 최고의 광대, 김
덕수(67)다. 남사당패였던 아버지 故김문학 선생의 손에 이끌려 국악에 입문한 다섯
살 때부터 지난 60년여 간 줄곧 장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김덕수 명인. 70년
대 반정부 집회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풍물패의 거리 공연이 금지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되자, 김덕수는 고민 끝에 명맥이 끊겨가던 전통 농악을 실내 타악 4중주로 재
탄생 시켰고, 그것이 바로 사물놀이의 시초가 됐다. 
  사물놀이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인생. 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편히 누워 쉬는 법이 없다. 그 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부터 재즈, 힙합, 영화음
악까지, 다양한 대중음악가와 소통하며 새로운 모색을 해온 길도 굽이굽이. 장구를
두드리며 평생을 길 위에서 살아온 김덕수 명인은 죽는 날까지 사물놀이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 말한다. ‘사물놀이’가 과거의 음악으로 치부되지 않고 현재진
행형의 음악이길 바라는 마음, 또한 전 세계 모두가 즐기는 음악이길 바라는 뜻에서
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다. 지난봄, 20년 동안 머물렀던 한국예술종합
학교 연희과의 교단에서 내려온 후로 그간 어렵게 버텨왔던 사물놀이 전용 극장까
지 정리하게 됐다. 사물놀이 보급을 위해 가족들을 뒷전에 두면서까지 애썼던 일들
이었기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이 허무하기만 한 김덕수. 마음만은 여전히
마당을 뛰어놀던 청춘인데 정년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데... 생
전 느껴보지 못한 변화를 두고 ‘시간의 경계에 살고 있다’고 표현하는 사물놀이 거장
김덕수, 그는 요즘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 “아티스트로서는 100점, 아버지로서는 20점짜리 가장”  

 “선생님하고 악수 한 번 해보셨어요? 선생님 악수하실 때 손에 힘이, 힘에서 전
해지는 에너지가 무대에서 늘 그렇게 선생님이 발산할 수 있는 그 에너지를 후배들
한테 전해주시는 분이세요.”
       - 국악인 박애리 인터뷰 中 

“무대에서 쓰러지는 날까지 연주하겠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사람 별로 없거든
요. 근데 저희 아버지는 그럴 거 같아요. 아들로서는 응원의 한마디보다 건강을 챙기
셨으면 좋겠어요.”
      - 아들/가수 김용훈 인터뷰 中 

  늘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며 거장 대우를 받는 명인 김덕수. 영광과 명예를 거머쥔
삶이지만 1년 365일 중 200일은 집을 떠나 살고 있으니 마음 한구석에는 가족을 향
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늘 자리하고 있다. 사물놀이가 음악의 한 장르로 성장해 세계
인에게 알리기까지 40년. 그 시간 동안 아내 김리혜(66세)는 혼자 살림하며 두 아들
을 키워야 했다. 힙합 가수 출신인 큰아들 김용훈(37세)은 아버지 김덕수를 두고 ‘아
빠로서는 20~30점, 아티스트로서는 100점’이라고 했을 정도인데...
  사물놀이밖에는 모르고 살았기에 자식들 커가는 모습도 제대로 지켜보질 못했던
명인 김덕수. 그가 길 위에서 사는 동안 용훈(37), 동훈(33) 형제가 장성했고, 결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차남 동훈 씨는 부부에게 4개월 전 귀여운 손주를 안겨줬다.
그 덕에 수십 명의 스텝을 호령하는 그도 집에서는 영락없는 손주 바보 할아버지로
돌변, 틈만 나면 선물을 사다 안기곤 한다는데... 아들들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손주 이찬이를 보여 아낌없이 보상받는 중이다. 평생을 길 위에서 예인으로 살아가
느라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아버지 역할을 다 하지 못했던 순간이 많았다. 다섯 살 때
부터 유랑하느라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던 그는 타고난 운명 때문에 가족을 꾸리는
것은 사치라고도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하늘이 선물처럼 내려줬다는 ‘가족’은 늘 고
마움이자 미안함의 존재. 거장 김덕수가 20점짜리 가장이 된 사연을 <휴먼다큐 사람
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 사물놀이 탄생 40주년 기념 연주회 그 뜨거운 현장 속으로~  

  인생 후반전에 들어선 명인 김덕수는 요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을 챙
기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물놀이 40주년 기념 연주회’를 앞둔 그는 가장 먼
저 생전 단짝이었던 故김용배의 묘소를 찾았다.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 탄생의 또
한 명의 주역이었던 고인. 30여 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친구의 마지막 길을 붙
잡지 못했단 죄책감 때문에 그간 명인 김덕수는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왔다
고 한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듯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은 오빠 김덕수를 위해 돌
아가신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집밥을 대접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는 사물
놀이 탄생 40주년 연주회 무대에 오르는데.... 사물놀이 거장 김덕수가 걸어온 파란
만장했던 길과 그의 인생을 기리는 그 뜨거운 무대를 만나본다...

(출처 - 네이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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